순식간에 과거로 돌아가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 매개체는 음악, 향기 또는 냄새, 책의 어느 구절 또는 영화의 한 장면 등등 다양하다.
혹은 함께 시간을 공유했던 사람과의 우연한 만남 같은.
영화는 어수선한 집안 곳곳을 비추며 시작하고 고등학생쯤 돼 보이는 앳된 얼굴의 사진이 클로즈업된다.
(이 영화는 흑백으로 진행된다)
곧 욕실 거울에 얼굴을 비추는 남자 한 명이 등장하고 동네 마트에 들른 그 남자 옆으로 한 여자가 들어선다.
안절부절못하던 여자가 결국 먼저 알은체를 했고 두 사람은 어색하게 짝이 없게 잘 지내고 있다는 근황을 전했다.
Jim과 Amanda는 어릴 적 함께 자란 이 동네에 각자 무슨 일로 방문한 것인지 밝히고 인사를 하며 헤어지는 듯하다가 마트 주차장에서 머뭇거리던 Jim이 커피 한 잔을 제안하고 Amanda는 잠시 망설이다 이를 수락한다.
둘은 오래되었고 이제는 거의 망해가는 영화관 ‘Blue Jay’ 근처의 카페에서 지독하게 맛이 없는 커피를 마시며 서로의 현재에 대해 묻고 답한다. 조금씩 긴장이 풀린 두 사람은 과거에 했던 장난을 다시 치며 어린 시절의 기억을, 그리고 그때 즈음의 그들로 돌아간 것처럼 웃고 떠들다 함께 Jim의 집으로 가게 된다. 추억이 가득한 물건들을 살펴보다 둘이 녹음한 role-playing 테이프를 들으며 다시 한번 그 순간을 재연하기로 했고, 아이처럼 즐거워하다 밀려오는 복잡한 감정에 떠밀리게 된다.
***
많은 경우, 추억은 나쁜 기억보다 좋았던 순간을 먼저 재생하며 그때의 감정을 소환한다.
그래서인지 어린 시절을 공유한 사람과의 한 때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 이동을 하는 것만 같다.
우리의 몸은 물리적 시간을 역행할 수 없지만 과거의 빛났던 순간은 기억해 내, ‘너 예전에도 이거 좋아했었잖아, 맞아 넌 이랬어, 어쩜 변한 게 없니’ 등등의 말들로 어딘가에 남아 있던 서로가 잊고 지낸 상대방을 찾아내 주기도 한다.
심지어 그것이 어린 시절의 첫사랑이라면.
고교 시절의 연애는 어른이 되어서 하는 것과 분명한 차이가 있다.
반쯤은 우정과 반쯤은 어떤 것이 사랑이란 감정인지 조차 알 수 없는, 순수하고 강한 욕망과 애정이 뒤섞여 뜨겁고도 깨지기 쉬운 상태로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끝난 후엔 마치 wood burning과 같은 흔적을 남긴다.
영원히 함께 할 것만 같았던 어린 연인은 대부분의 경우 결국은 헤어지게 되고 어른이 된 지금은 그 무엇도 영원할 수 없다는 걸 녹록지 않은 삶을 살아내며 알게 된다.
우리에게 과거의 시간이 눈물 나도록 소중하고 그리운 것은 어떻게 하더라도 그때의 나로, 혹은 우리로 결코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일 것이다.
너와 나의 시간은 과거에는 함께 흘렀지만 어느 순간 어그러졌고 이제는 다르게 흐른다.
타이밍이라는 것은 얄궂게도 조금만 틀어져도 결코 만날 수 없는 곳으로 서로를 끌고 가버린다.
Jim과 Amanda의 눈물이 각자 다른 순간 흘렀던 것은, 인생은 결국 타이밍의 문제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내가 놓아버린 것인지 놓쳐 버린 것인지 완전하게 선 그을 수 없는 아픈 이별의 순간을 깨닫게 되는 순간,
마치 타임머신의 캡틴이 다가와 속삭이는 것만 같다.
’ 이번 여행은 즐거우셨나요. 자, 이제 돌아갈 시간입니다.'
신선도 : Fresh(92%)
'문화생활, 전시, 콘서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시] 푸른 눈의 수묵 (이응노 미술관) (51) | 2024.11.14 |
---|---|
[콘서트] 2024 HER 아이유 콘서트 후기 (+콘서트 세트리스트 / 앵콜콘 예고) 240310 (28) | 2024.11.01 |
[콘서트] 34시간의 기다림, 현장판매 현판대기에 성공한 아이유 콘서트 후기 (+현판 꿀팁) 240309 (31) | 2024.10.31 |
[영화] 파묘 (2024) (0) | 2024.02.26 |
[영화] 추락의 해부(Anatomy of a Fall, 2023) (2) | 2024.01.28 |